얼마 전이었죠, 지난 6월 15일이었는데요! 4선 국회의원이신 정청래 의원님께서 차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시겠다는 깜짝 선언을 하셨지 뭡니까?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서 더불어민주당이 새로운 당대표를 뽑을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출사표를 던지시니, 역시 정청래 의원님 답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거대한 제1당의 대표 자리는 아무래도 국민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자리인데요. 제가 이번 기회에 정청래 의원님의 프로필부터 시작해서, 그분의 정치 인생, 그리고 뜨거운 논란들까지, 궁금한 모든 걸 한번 시원하게 파헤쳐 보겠슴니당!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서 깜짝 놀라실 걸요? 그럼 저와 함께 정청래 의원님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러 가보실까용? ㅎㅎ
궁금한 그의 모든 것! 정청래 의원 프로필 속속들이 파헤쳐 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인물 탐구를 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역시 기본적인 정보들이더라구요. 저도 정청래 의원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들여다본 부분이었답니다.
- 출 생 : 1965.4.18 (60세)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 거주지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 현 직 : 제22대 국회의원(서울 마포을, 더불어민주당)
- 가 족 : 배우자(김인옥), 자녀(3남)
- 학 력 :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북한통일정책학, 석사),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 대전보문고
기본적인 정보부터 탄탄하게!
- 출생: 1965년 4월 18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서 태어나셨구요. 지금은 딱 만 59세가 되셨네요. 와, 6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저렇게 파워풀하시다니, 진짜 대단하다 싶었답니다.
- 거주지: 현재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살고 계신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지역구도 마포을이시니, 마포와는 정말 깊은 인연을 갖고 계신 듯하더라구요.
- 가족: 사랑하는 배우자 김인옥 여사님과 슬하에 듬직한 아들 셋을 두셨다고 해요. 이름은 정한백, 정한결, 그리고 정한솔 군이라고 하네요. 와, 아들만 셋이라니, 집안이 늘 북적북적하겠죠? 뭔가 보기만 해도 훈훈한 느낌이 드는 대목이었어요.
- 종교: 개신교, 그중에서도 나사렛성결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합니다.
- 현직: 지금은 당당히 제22대 국회의원이시구요, 지역구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서울 마포구 을입니다. 물론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구요!
배움의 길,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
정청래 의원님은 학창 시절부터 남다른 길을 걸어오셨더라구요.
- 학력: 진산국민학교와 진산중학교를 거쳐, 대전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하셨구요. 이후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하셔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배움에 대한 열정은 쭉 이어져서,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북한통일정책학 석사 학위까지 따셨다니, 정말 학구열도 대단하시더라구요.
- 병역: 흥미로웠던 건, 병역이 수형으로 면제되셨다는 점이었어요.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젊은 시절의 굵직한 사건과 관련이 있답니다.
- 초기 경력: 학창 시절부터 운동권 활동에 적극적이셨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후 길잡이학원이라는 곳을 운영하시면서 영어 강사로도 활동하셨다는 걸 보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재능이 있으셨던 것 같더라구요. 뭔가 의외의 모습이랄까요?
파란만장한 그의 정치 여정!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이야기
정청래 의원님의 인생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이내믹하더라구요. 특히 젊은 시절의 이야기부터 정치 입문, 그리고 4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이지 흥미진진했슴니다!
젊은 날의 뜨거운 함성, 그리고 그 대가
정 의원님은 1965년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나 대전 보문고,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1987년 6월 항쟁에 참가했다가 짧게 구류를 살았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역시 젊은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던 거겠죠?
그리고 1989년에는 정말이지 굵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바로 '미대사관저 점거 사건'인데요. 당시 대학생이셨던 정 의원님은 반미 시위의 일환으로 주한 미국대사 관저 담을 넘어 시너를 뿌리고 폭발물을 투척하려는 시도를 주도하셨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의 선고를 받으셨구요.
왠지 모르게 영화 <1987> 같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라구요. 이후 1995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복권되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미국 비자 발급이 거부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불이익을 받으셨다고 하는데요. 나중에 정 의원님께서 당시 미국 대사에게 공식 사과했고, 대사도 이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이 사건은 지금도 정청래 의원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어쩌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논란 중 하나로 남아있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정치 입문
1996년에는 오랫동안 해오시던 학원업을 접으시구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말이지 큰 결심이었을 것 같았슴니다!
그리고 2002년경에는 이른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하셔서 활동하셨다고 해요.
당시 노무현 후보를 돕기 위한 유권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고 하니, 초기 정치 행보에 노무현 전 대통령님과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겠더라구요. 드디어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정 의원님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시면서 정식으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뭔가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마포을의 터줏대감, 4선 의원이 되기까지
정청래 의원님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 마포을에 출마하셨는데요. 당시 '탄핵 역풍'에 힘입어 무려 44.8%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강용석 후보를 꺾고 당선되셨다고 합니다. 첫 국회 입성부터 정말 화려했죠?
이후 제19대, 제21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서울 마포을에서 연달아 당선되시면서, 무려 4선 의원의 반열에 오르셨더라구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제는 중진급 의원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신 건데요. 다만, 제20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해 잠시 '정치적 유배' 기간을 보내기도 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복귀하시고, 이후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당내 입지를 더욱 굳혀나가셨다니, 정말 정치적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슴니다!
주요 보직과 활약상
국회의원으로서 정청래 의원님은 정말 많은 역할을 수행해 오셨는데요.
- 당내 주요 보직: 열린우리당 전자정당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인터넷소통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수석 최고위원까지. 당의 핵심 요직들을 두루 거치셨더라구요. 정말 당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 상임위원회 활동: 제21대 국회 후반기에는 과기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셨구요. 제22대 국회 전반기에는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으셨어요! 이 외에도 문화관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 등 여러 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법사위원장으로서 주요 개혁 및 사법 이슈들을 주도하셨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했슴니다.
정 의원님, 제22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원장을 맡으셨을 때도 여러모로 큰 역할을 해주셨는데요.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셨다는 얘기도 있었구요. 아, 그리고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12.3 내란 사태 조사 추진’ 같은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으신 걸 보면, 현 정부에 대한 정 의원님의 입장이 얼마나 단호하신지 절로 알겠더라구요. ‘사법·검찰·언론 개혁 태스크포스’를 즉시 가동하겠다고 하신 것도 그렇구요. 진짜 추진력이 남다르다니까요!
이재명 대표와의 '운명 공동체', 그리고 그의 정치적 신념
정청래 의원님 하면, 아무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과의 끈끈한 관계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두 분의 정치적 동행은 정말이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인간 이재명' 서평, 가슴으로 읽어낸 공감
2021년 12월 13일이었어요.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님의 자서전, ‘인간 이재명’에 대한 정청래 의원님의 감상평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정 의원님은 이 책을 읽고 “인간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실력과 자격이 있다”는 주장을 아주 강하게 펼치셨다고 합니다.
그분 말씀이 “유능한 소설가라도 이 같은 삶을 엮어낼 수 있을까”라며,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흐느끼며 읽었다”고 하셨다네요. 뭔가, 진짜 가슴으로 읽어내려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이재명 대표님이 형편 때문에 학교가 아닌 공장을 선택해야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그가 비뚤어지지 않고 ‘의지의 한국인’이 된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을 것”이라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셨구요.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고난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며 “가난이 그의 가장 큰 재산이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말이 맞는지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라고 누리꾼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저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구요. 이후 정청래 의원님은 “저도 또 하나의 이재명이 되겠다”며 힘을 보태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셨다니, 두 분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답니다.
당대표 출마 선언에 담긴 '이재명' 그리고 '싸움'의 의지
얼마 전 당대표 출마 선언 현장에서 정청래 의원님은 정말 단호하게 말씀하셨죠. “이재명 대통령의 운명이 곧 제 운명입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선거 출마 선언을 넘어, 자신이 이번 당대표 경선에 나선 진짜 이유를 보여주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였구요. 솔직히 저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 의원님은 3년 전, 이재명 대통령님과 정청래 당대표라는 꿈이 있었다고 하시면서요. 그 꿈을 잠시 미뤄두고 지난 3년간 윤석열 정권의 검찰독재와 내란 음모에 맞서 맨 앞에서 싸워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정말 치열한 시간을 보내셨구나 싶었구요.
이번 대선을 “내란 종식, 정권 교체,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시대정신의 결실로 규정하시면서요. “이제 남은 과제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고 못 박으셨죠. 그에게 당대표는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한 전투복’이라는 표현까지 쓰시더라구요. 진짜 뭔가 결의가 느껴지지 않으세요?
출마 선언의 핵심 메시지도 정말 인상적이었슴니다. ‘국민주권시대에 맞는 당원주권시대 개막’을 기치로 내걸으시면서, ‘정부와 한 몸처럼 행동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셨는데요. 역할 분담도 명확하게 설명하시더라구요. ‘대통령은 정부 업무, 당대표는 싸움 맡겠다’고 하셨다니, 정말 싸움꾼 기질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주요 공약들을 보면, 이러한 신념이 더 잘 드러나는데요.
- 12·3 내란 사태 조사 추진: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약속하시면서 내란 종식 의지를 표명하셨구요.
- 3대 개혁 TF 즉시 가동: ‘사법·검찰·언론 개혁 태스크포스’ 설치를 공언하셨습니다.
- 전당대회 혁신: ‘전당원 1인 1표제 도입’, ‘당원주권위원회 신설’ 등 당원의 주권을 확대하는 방안들을 제시하셨어요.
이 모든 걸 보면, 정청래 의원님의 출마는 정권과 당을 밀착시켜 안정적인 집권 틀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더라구요. 민주당 내에서는 ‘친명 강경파’ 리더 위치를 굳건히 하시면서 경선 경쟁력을 강화하고 계신데요. 당원의 권한 강화, 이재명 정부 지지 기반 강화, 그리고 사법·검찰·언론 개혁 가속화라는 세 가지 기조를 중심으로 출마를 선언하셨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사이다'인가, '논란의 중심'인가? 정청래 의원의 양날의 검
정청래 의원님을 보면 '사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논란의 중심'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는 것 같더라구요. 그의 특유의 직설화법과 강경한 정치 태도가 늘 주목받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논란에 휘말리며 정치 인생 내내 '양날의 검'을 들고 싸워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뜨거웠던 이슈 메이커
앞서 말씀드렸던 1989년 미대사관저 난입 사건은 정청래 의원님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논란 중 하나인데요.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발언과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논란을 불러오셨더라구요.
- 2014년 북한 무인기 사건: 당시 “북한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정부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하셨다가, 한미 공동조사 결과에 의해 곤혹을 치르셨다고 합니다. 음... 저도 그때 그 발언을 들으면서 '정말 솔직하시다'는 생각과 동시에 '좀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답니다.
- 2015년 아들 성추행 사건: 이 사건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으시기도 했구요.
- 2018년 주차장 접촉사고: 아무 조치 없이 떠났다는 의혹이 제기돼 비난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 2023년 법사위원장 시절: 회의 운영의 편파성으로, 그리고 2024년 국정감사에서는 과도한 발언 시간 사용 문제로 도마에 오르셨다고 해요.
- 2020년 금태섭 전 의원 비난: 금태섭 전 의원을 향해 "정치 불량배 철새"라고 비난하셨다가 상대에 대한 비신사적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으시기도 했죠.
이처럼 정청래 의원님은 지지층에게는 ‘사이다’라는 시원한 평가를 받지만, 반대 진영에게는 ‘불량품’이라는 거친 평가가 동시에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정치판에서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대표로서의 기대와 우려, 과연 그의 선택은?
정청래 의원님은 분명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상징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제 생각엔 말이죠, 만약 그분이 당대표가 된다면, 민주당은 지금보다 더 명확한 ‘전투형 야당’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봐요. 이미 김병기 원내대표님도 이재명 대표님의 호위무사로 불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청래 의원님도 충분히 당대표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재명 대표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마도 든든한 ‘호위무사’들이 아닐까 싶거든요. 그래서 저는 논란이 있더라도 강성 인물이 오히려 더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강성’ 이미지가 새로운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잦은 논란과 강성 발언은 그대로 당의 확장성과 자율성을 저해하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재명이 정청래이고, 정청래가 이재명이다’라는 강력한 밀착 전략이 이재명 대표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민주당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정청래 의원님께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정청래 의원님의 앞으로의 행보와 민주당의 미래 방향성을 함께 지켜보는 것도 정말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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